[행운을 부르는 부적과 아름답고 쓸모 있는 장신구에서 바라만 봐도 좋은 예술품이 되기까지, 바라는 대로 향유할 수 있는 주얼리의 다목적 세계.]
인간의 크고 작은 역할이 기계에 흔쾌히 맡겨지는 세상에서 보석을 고르고, 깎고, 배열하는 지난한 과정을 버티도록 만드는 것은 작가 개인의 이야기다. 결국 그것만이 오래오래 살아남는다.
스페이스55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여놓은 이정현 작가는 오랜 시간 가죽으로 조각과 공예품을 만들어오다가 지금은 ‘에이프 오브젝트(Ape Object)’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밀랍 조각과 정밀 주조 기법을 활용해 만든 금속 주얼리를 선보이고 있다. “신화 속 인물이나 불상의 머리를 형상화한 펜던트의 뒷면은 해골과 뇌, 뼈의 절단면을 생생히 품고 있어요. 상반된 이미지에는 모든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모든 상징은 하나의 의미로만 해석되지 않아요. 개인의 삶과 맞닿으며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기도 하죠.”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그것이 소장 가치를 높인다.
“앞으로도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어요. 액세서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피부에 올려질 오브제 혹은 작은 조각품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죠. 공예와 조각의 경계가 점점 더 희미하게 느껴져요.” 합정동에 자리한 이정현의 작업실은 고행자의 수련 공간으로 봐도 무방했다. 좁은 책상 위에서 그가 미세한 바늘로 재료를 고심해서 만지작거리며 수행하는 겹겹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주얼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트 피스가 되어간다.
“주얼리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식은 금속 세공, 왁스 카빙, 3D 제작, 이 세 가지예요. 그중 왁스 카빙은 6400년 전부터 작은 동상이나 사물을 제작하는 데 활용한 정밀 주조(Lost Wax Casting) 기법에서 파생된 조각 기법이죠. 부드러운 왁스로 모형을 만들고 그 위에 액체 석고를 부어 완성하기 때문에 단단한 재료에서 시작하는 금속 세공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요. 훨씬 생동감 있고, 왠지 모르게 ‘따뜻한’ 느낌도 들죠.” 해골이나 뼈의 형상을 한 이정현의 주얼리는 서브컬처에 대한 그의 애정과도 맞닿아 있다. “반응이 두렵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내가 만든 주얼리를 착용할까?’ 궁금하기도 했죠. 아직까지는 해외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사람들, 착용보다 관람의 목적으로 구매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에서 많은 용기를 얻어요.”
이정현의 말처럼 누군가 착용할 때 새로운 의미와 맥락이 생긴다는 점도 다른 예술품과 다른 주얼리만의 매력이다. 골수암을 극복한 사람이 대퇴골 팔찌를 소장하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메두사 목걸이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느 커플이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의미로 기묘한 형태의 커플 링을 맞추기 위해 이정현의 주얼리를 찾는다. 그 역시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두개골 오브제를 만드는 자기만의 의식을 치른다. “오브제 하나를 조각하는 데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려요. 평생 만들 수 있는 작품의 개수가 한정적이라는 뜻이죠. 매년 작업을 하며 인생의 유한함을 상기하고 있어요.” 이정현은 신기술의 범람 속에서 느릿느릿 완성된 수공예 작품이 사랑받는 것을 볼 때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세밀하게 꿴 동시대 주얼리 아티스트의 바람과 신념은 출근길에 무의식적으로 신체에 주얼리를 착용하는 우리가 다시금 주얼리를 감상하고, 한 번 더 만지작거리게 만든다. 오래전 과거의 사람들이 보석을 쓰다듬으며 소망을 되뇌고, 자그마한 귀고리 한 짝을 예술품으로 감상하고 사랑한 것처럼. (VK)
Editor. GAYEONG RYU
Writer. AREUM KIM